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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가야리 유적에서 목조 구조물을 이용한 판축토성 확인

2019년 10월 31일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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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기둥ㆍ판축공법 사용한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 / 현장공개 10.31. 오후 1시 -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박종익)는 지난 4월부터 시작한 함안 가야리 유적(경남 함안군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아라가야 판축토성을 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 구조물과 이를 사용한 축성기술을 처음으로 확인하였다.


  올해 발굴조사는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의 중심 유구인 토성이 축조된 방법을 규명하기 위해 성벽을 중심으로 우선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토성벽 내부에서 중심토루 구간을 중심으로 판축성벽 축조와 관련된 나무기둥(목주, 木主)과 횡장목(橫長木, 판축 시 가로방향으로 고정시킨 목재) 등 목조 구조물들과 달구질(성토다짐) 흔적이 확인되었다.
  * 토루(土壘): 굴착 공사에서 특정부문의 지지물(판축성벽의 지지대 역할)
  * 성토(盛土): 성질이 다른 흙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쌓아올리는 기술


  판재를 지지하는 영정주(永定柱, 나무기둥)은 성벽 기초부에 성벽을 따라 중심토루 내외곽에 약 60~80cm의 간격으로 열을 지어 설치된 것으로 파악된다. 안팎으로 약 6m 간격을 두고 평행하게 설치된 나무기둥 사이로는 중심토루가 있었다.


  성벽을 가로질러 설치된 횡장목은 중심토루 윗부분에서 약 60~70cm 깊이에서 확인되었다. 이 횡장목(추정 지름 10~15cm, 길이 약 4.8m) 역시 영정주와 마찬가지로 약 60~80㎝의 두고 8개가 좁은 범위에서 영정주를 중심으로 연결 설치된 모습이었다. 중심토루는 5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나란히 성토다짐되었는데, 중심토루가 차례대로 성토되는 과정에서 여러 개의 횡장목이 중심토루의 구획 기둥(영정주)에 결구되어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성벽방향을 따르는 종장목(縱長木)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 결구(結構):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맞물려 짜 맞추는 기법
  * 종장목(縱長木): 영정주와 영정주 사이에 종(縱)방향으로 고정시킨 목재


  또한, 중심토루에서 성토방법이 확연하게 차이나는 지점(축조구분선)을 확인했는데, 이를 통해 성벽을 구간별로 나눠서 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축조구분선 바로 서편에서 점성이 높고 고운 점질토를 달고로 두드려 다진 흔적(지름 8~10cm)도 확인되었다. 달구질 흔적은 영정주와 횡장목으로 구성된 목조 가구와 함께 판축공법이 아라가야 왕성의 축조 당시 차용되었음을 알려주는 유력한 흔적이다. 
  * 달고(達固): 땅을 단단히 다지는데 쓰는 기구
  * 판축공법(版築工法): 나무기둥과 판으로 틀을 만들어 흙을 넣고 달고 등으로 다져서 단단하게 쌓아 올리는 고대 토목공법


  조사 범위에서 전체적으로 확인된 목책은 단면조사 결과, 중심토루를 파고 지름 30cm 정도의 나무기둥을 되묻어 설치한 것으로 확인된다.


  지금까지의 조사를 토대로 보면, 함안 가야리 유적의 토성은 가야권역 내의 동시기 유적과 비교할 때, 그동안 발견된 사례가 없는 축조기법과 규모를 보인다. 토성벽 축조 공정마다 영정주와 횡장목으로 구성된 목조 가구를 설치하고, 판축상의 성토다짐(달구질)을 하는 등, 정교한 대규모 토목공사가 이루어졌다. 토성의 규모는 현재 조사구역 내에 한정지었을 때, 전체 높이는 약 8.5m, 폭은 20m 내외이다. 이와 같은 축조기법과 출토 유물, 탄소연대 등을 통해 추정해보면 아라가야 왕궁지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함안 가야리가 최근 ‘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했고, 이번에 의미있는 발굴 결과까지 나온 만큼 이 일대에 대한 기초조사와 중장기 발굴조사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여 체계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앞으로 아라가야 왕성의 전체적인 규모와 공간 배치, 유물 등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연구가 이루어지면 가야사 복원과 연구 활성화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함안 가야리 일대는 1587년에 제작된 조선 시대 읍지 『함주지(咸州誌)』와 일제강점기의 고적조사보고 등에서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었고,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신읍(臣邑)’ 등 왕궁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어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어 왔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8년 5월 발굴조사를 시작해 토성벽, 목책, 건물지 등 다양한 왕성 관련 시설과 유물들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지난 21일 사적 제554호로 지정되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 읍지(邑誌): 한 고을의 연혁과 지리‧인물‧생활‧문화‧풍물 등을 기록한 책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는 31일 오후 1시 발굴현장을 공개한다. 관심 있는 국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